요 근래 제가 먹고 싶었던 음식을 ㄱㄴㄷ 순으로 나열해보겠습니다.
- 감자 스프
- 갓 구운 애플파이(★)
- 곱창 전골
- 들기름 막국수
- 버터핑거 자이언트 엘리게이터
- 어묵 꼬치 잔뜩
- 피스타치오맛 젤라또
써놓고 보니 탄수화물의 비율이 압도적인 것 같지만 어쨌든... 위 목록에는 혀가 아는 익숙한 맛도 있고, 관념적인 이미지만 남아 저를 유혹하는 음식도 있습니다. 요즘 저에게 그런 음식이 바로 '갓 구운 애플파이'입니다. 격자 무늬가 올라간 설탕 솔솔 따끈한 애플파이를 꼭 먹고 싶은데 활동 반경 안에서는 찾기 어려워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혹시 근처에서 발견한다면 제보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어릴 때 즐겨 보았던 <빨간 머리 앤>, <나니아 연대기>, <해리 포터> 같은 영미문학이나 영화에는 초글링인 저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음식들을 차려놓고 만찬을 벌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는데요. 개암나무 열매라든지 칠면조 구이, 초코 퍼지, 크리스마스 푸딩 등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를 음식들은 언제나 근사한 상상의 영역에 남아 있었습니다. 스스로 음식을 사먹을 수 있게 된 지금은 저를 설레게 했던 환상 속의 음식들이 사실은 별다를 것 없이 예사로운 메뉴들이었다는 깨달음과 더불어, KFC에서 그레이비 소스를 처음으로 추가해 본 후 '이런 맛이었구나' 하고 즐거운 소회도 누릴 수 있게 되었어요.
어릴 때 저는 편식이 심하고 고집도 황소 같아서 싫은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굶겠다고 입을 딱 다물고 있는 아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어린이였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콩나물과 시금치를 제외한 나물 반찬을 아주 싫어했는데, 급식으로 나온 가지 무침을 절대 삼키지 않고 입 안에 숨겨 뒀다가 화장실에 가서 몰래 뱉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낯선 음식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기피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놓친 재미난 음식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우리는 살기 위해 먹지만, 혹자는 먹기 위해 산다고도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인생에 남은 끼니가 몇 번일지 알 수 없으니 더 맛있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소소한 목표를 가져 봅니다. 책 속의 음식들이 제게 생경한 세계를 꿈꾸게 했던 것처럼, 제가 모르는 식도락의 세상을 함께 탐구해주실 분은 언제든 적극 환영합니다.
-당신의 친구 H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