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근하기 전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날씨 어플을 확인하고 무슨 외투를 입어야 할지 정하는 것입니다. 제 행거에는 자주 입는 겨울 외투가 서너 벌 걸려 있습니다. 고민할 시간이 없을 때는 스파오에서 가성비로 마련한 숏 패딩, 영하의 날씨에는 생존 필수품인 롱 패딩을 뒤집어 씁니다. 날이 덜 춥거나 롱 스커트를 입은 날엔 검은 코트를 고릅니다. 안에 입은 옷이 비교적 얇아서 움직임이 부대끼지 않을 때는 지하철 구제숍에서 3만원에 구매한 갈색 무스탕을 입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습관처럼 '작년엔 분명 벌거벗고 다닌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제가 갖고 있는 옷가지가 아주 적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매년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면 한 봉다리 버릴 옷이 생기거든요. 몇 년은 거뜬히 더 입을 수 있지만 그다지 설레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고 나면, 그 자리를 채울 예쁜 새 옷을 구매하고 싶어집니다.
센스와는 별개로, 저는 저의 '꼴'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를 하는지가 그 사람을 파악하기 가장 쉬운 수단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지금 끼고 있는 헤드셋을 구매한 이유도 사실은 쫌 간지나보인다는 게 첫 번째였음) 인터넷에서 본 멋진 착장을 실현하고 싶은 모방 열망에 사로잡혀 장바구니에 잔뜩 옷을 담았다가도, 지갑 사정을 고려하며 하나씩 덜어낼 때의 슬픔…. 혼자만 느끼는 구차함은 매일 디자이너 브랜드 아이템을 걸치고 출근하는 또래 동료를 볼 때 더욱 증폭됩니다.
취향의 영역을 구축하는 일이 결국 소비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은 것을 원할 수록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갖고 싶은 건 점점 많아지고, 하나를 사서 만족스러워졌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닌 거 같아요. 나의 취향이라는 게 진실로 '자기만족'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요즘 저를 매료시키는 이들은 세월을 걸치는 사람들입니다. 십여 년 전에 산 코트를 깨끗하게 관리해서 입고손때 묻은 필통을 몇 년째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보여지기 위한 소비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도 없는 일상일 수도, 단순한 근검절약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쉽게 버리지 않고, 필요 이상의 것을 찾지 않으면서 충분하게 살아내는 이들의 본새야말로 제가 터득하고 싶은 인생의 태도입니다.
여전히 저는 아기자기한 키링과 폭신한 양말을 구경할 때 기쁨을 느낍니다. 이번 달 월급을 타면 장바구니에서 지우지 못한 꽃무늬 원피스를 결제할지 말지 고민 중입니다. 그래도 제가 걸치는 꼴에서 좀 더 재미난 철학이 읽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럼, 다음 메일에서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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