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쇠러 큰집에 갔던 어느 명절, 주방에 있던 큰 엄마가 "하은아, 와서 이것 좀 같이 옮기자!"라고 외쳤다. 방에 있던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두리번거렸고, 나와 눈이 마주친 큰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너 말구, 느이 엄마."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이는 더 이상 학급 면담이라든지 녹색어머니회에 참석해서 '김하은'의 대변자로서 누군가를 만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엄마이기 때문에 딸의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내심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어떤 때는 드물게 내가 그이의 딸이 되기도 한다. 일요일 날 대예배를 드리고 조용히 빠져나오다가 들켜 제4여전도회 집사님들 무리에 둘러싸일 적에는 집사님의 딸이 되고, 결혼식에 참석해 (길거리에선 알아뵙지도 못할) 친척 어르신에게 낯선 친숙함으로 등허리를 문질러지며 네가 현숙이의 큰딸이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그렇다. 그런 경계를 비웃듯 나의 되바라진 동생은 종종 엄마와 나를 이름으로 불러제낀다. 건방지고 웃기다. 그래도 이름을 또렷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따라간다고들 한다. 온전히 내 것이지만 호명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는 그것을, 너무나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함께 지냈기 때문에 닮아가는 것 역시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평범하고 물 흐르듯 둥근 어떤 글자들을 아마도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