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부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첫사랑을 맞닥뜨린 순간을 섬세하게 표현한 까닭도 있지만 실은 내가 안경을 처음 썼을 때 느낀 기분과 무척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는 안경을 성인이 되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그 전까지는 안경을 쓸 만큼 시력이 나빠진 줄 모르고 있었다.
눈이 나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대학에 올라와서가 처음이었다. 과대라는 사람이 커다란 강의실에 새내기들을 앉혀 놓고 뭐라뭐라 설명을 한 다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하라며 화이트 보드에 커다랗게 번호를 적어 주었는데, 뒷자리에 앉은 나는 흐리멍텅하게 보여서 도무지 글자를 읽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앞자리에 주로 앉아서 별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이후 한두 달은 그냥 다니다가, 연극 공연을 관람하러 갔을 때 배우들의 얼굴을 보려고 2시간 내내 눈만 찡그리게 된 경험 이후 결국 안경을 맞추러 갔다.
사실 어렸을 때는 안경을 동경했던 적도 있다. 안경을 쓴 사람이 이지적이고 어른스러워 보였다.(그 당시 추구미가 그랬던 거 같음) 그래서 이모가 안 쓰는 안경을 얻어다 렌즈만 빼고 쓰고 다니기도 했다. 그때는 안경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놈인지 잘 몰랐던 것이다. 마침내 안경을 처음 쓰게 된 순간의, 뭔가 저어되면서도 내심 설렜던 감정이 기억난다. 안경을 쓰고 본 세상은 하이마트에 진열된 커다란 TV만큼이나 생생했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찡하게 아플 정도였다. 안경사는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안경을 너무 내려 쓰지 말고 콧등에 치켜 얹으라고 조언했다.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말했던 게 생각난다. 엄마, 저 간판 글씨가 이렇게 잘 보이는 거였어? 언제부터 세상을 헛산 거지? 담벼락에 칠해진 페인트의 질감이 보이는 게 새삼스러웠다.
무언가를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로움과 때로는 지긋이 누르는 고통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안경이란 녀석은 나름대로 깨달음을 주는 바가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그렇게 선명하게 볼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