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y boom 중 하나가 당근마켓이다. 예전부터 어플 설치는 해놨지만 자주 들여다보진 않았고, 처분하고 싶은 게 있어 서너 번 판매글을 올려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최근 여름 옷을 사고 싶어 구경하다 보니 점차 스며들어… 뒤늦게 당근의 진정한 매력을 깨달아버렸다. 마침내.
나는 보기보다 물욕이 많은 사람이다. 초딩 때부터 아기자기하고 예쁜 걸 사모으는 걸 좋아했다. 만약 흡족할 만큼 뭔가를 사들였다면 지갑과 지구에게 무척 죄스러운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제 의류를 좋아하게 됐다. 잘 고르면 새 옷보다 튼튼한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같은 디자인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새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다소간 덜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메리트다.
물론 새 것을 사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단지 내가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새 물건을 소비하고 또 버릴 때마다 지구에게 조금씩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범우주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먼지보다도 약소하지만 지구에는 나 같은 존재가 80억이나 살고 있다. 너무너무 많다… 그런데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진짜 새 것을 사는 건 아니니까 좀더 가벼운 마음이 되는 것 같다.
옷 쇼핑을 굳이 당근마켓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에 대한 연장선이다. 특히 여름 티셔츠는 한두 철 입으면 목이 늘어나고 색이 바래서 잠옷으로 전락하기가 일수다. 너무 후줄근한 차림새도, 매번 똑같은 옷을 입는 것도 싫은 까다로운 이에게 당근마켓에서 올라온 ‘시착만 해본, 3번 입은, 택도 안 뗀’ 멀쩡한 여름 옷들은 마치 금싸라기처럼 느껴질 수밖에. 어차피 버릴 거라면 내가 알차게 뽕 빼고 버려주겠다 뭐 이런 느낌으로…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구매한 옷들은 한 주인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훨씬 저렴하고, 또 멀쩡했다. 그러니 요즘엔 필요한 게 있으면 당근마켓에 제일 먼저 검색해보는 것 같다.
구구절절 거창한 사유를 제치고 당근마켓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재밌기도 하다. 오 이런 것도 팔아? 와 엥 이런 걸 판다고? 가 스크롤마다 교차한다. 한편으론 별 생각 없이 이고 지고 살던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으니 좋기도 하고. 미니멀 라이프에도 적격이다.
어제도 거래를 하기 위해 도보 15분 거리의 화랑대역까지 걸어 다녀왔다. 몇 마디 안 되는 건조한 대화 끝에 성공적으로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따끈따끈한 거래 후기를 받았다.(다들 알겠지만 당근 거래를 마치면 선택지를 눌러 후기를 남길 수 있음) 물론 나 역시 펜팔 답장을 보내듯 좋은 옵션을 모두 선택해 거래 후기를 남겼다. 이것이야말로 공유경제 사이에 피어나는 진정한 이웃 간의 정이 아닐까…... 하여튼 당분간은 당근🥕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을 듯하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