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떤 날들 역시 가만히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쓱쓱 자라나 지나가 버립니다. 물론 사소한 고난과 역경은 있겠지만 그 역시 깨끗하게 샤워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곧 잊혀지는 정도의 사건입니다. 요즘 저를 이루는 것은 황금빛 행운도 끔찍한 불행도 없는 소소한 날들입니다. 늦잠을 잔 주말에 머리를 자르러 가거나, 당근마켓에서 헐값에 가방을 팔아치우고 개운해하는 일들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습니다. 이런 날들은 잘고 건조해서 마치 모래시계 속 모래 알갱이 같습니다. 그러모아 쥐면 포스스 흘러내릴 것만 같습니다.
그게 싫다는 말은 아니고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겨서 이 평화가 거짓말처럼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슥슥 지나가는 일상을 만끽하는 수밖에요. 할 수 있는 만큼 스스로에게 성실하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전국적으로 쏟아진 폭우로 인한 재난 사고의 뉴스를 들었습니다. 보탤 수 있는 것이 약소한 기도와 기부 뿐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더 큰 피해가 없길 바랄 따름입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여러분이 무조건 안녕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