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른들이 자기 나이를 말하는 대신 몇 년생이라고 하는 것이 어른의 화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이제는 알겠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으니 정말 나이가 몇 살인지 가물가물한 것이다.(난 원래도 셈에 좀 약하다) 그런데 얼마 전 '만 나이 통일법'이 생기면서 나이가 2살 줄었다. 큰일이다. 이제 더더욱 나이를 세는 것이 헷갈려졌다.
몇 년 전 소모임에 가입하면서 동갑이 아닌 친구들을 다양하게 사귀게 될 기회가 있었다. 나보다 많기로는 서너 살, 어리기는 너덧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친구들이었다. 어플을 통해 만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닉네임을 썼다. 그중 한 친구가 자신을 부를 땐 언니라고 불러도 되지만, 닉네임만 친근하게 불러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한국식 이름 대신 닉네임을 썼기 때문에 반말이 훨씬 쉽게 입 밖으로 나왔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 모임에서만큼은 나 역시 어린 친구들이 다른 호칭 없이 편하게 부르는 것을 개의치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단지 몇 년 늦게 태어났다고 해서 내가 그보다 대단히 성숙한 어른일 리는 없는 것이다. 한두 살 차이로 깍듯하게 위계를 나누는 것이 가끔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에 나와 보니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이 참 많고, 나도 스스로를 어른으로 느끼지 않는다. 어른은 어떠한 경지 같다. 늘상 수행하며 지혜와 겸양을 갈고 닦아야만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인보다는 친구라는 말을 써야 직관적으로 와닿는 관계들이 있다. 그리고 친구가 되었을 때 더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니/동생의 사회적 역할 수행을 떠나 진심 어린 친근감으로 교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왕 만 나이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김에 '동갑'끼리가 아니더라도 퉁치고 친구가 될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이랑은 전혀 상관 없이, 두고두고 즐겁게 지낼 좋은 친구를 얻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