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여아에게 가장 좋아하는 색깔을 물으면 십중팔구는 분홍색을 외치겠지? 일단 나는 그랬다. 올해 신학기 쯔음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던 초등학생 책가방이 죄다 화려한 분홍색이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 시절엔 스스로 고를 수 있는 건 모두 핑크였다. 신발 주머니 속 실내화 앞코, 8절 스케치북, 문지를 수록 얼룩만 생기는 고무 지우개까지. 울 엄마는 점잖은 걸 좋아하는 취향이라 나풀나풀 프릴 원피스 같은 옷은 잘 안 입혔다. 유치원 시절 핑크 공주 드레스 입고 싶다고 징징거려도 절대 안 사줬다. 그러다가 머리 좀 크고 나선 핑크는 유치하다며 파랑, 그리고 무채색의 세계로 훌쩍 넘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여자애들만의 핑크빛 세계를 다시 맞닥뜨리게 됐다. 어린이대공원 내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겨울 평일에는 손님이 없을 때가 부지기수다. 한 시간 넘게 놀이기구를 타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핸드폰만 할 때도 있었으니까. 나는 주로 유아동이 탑승 가능한 놀이기구 작동을 도맡았는데, 그날은 ‘스윙베어’라고 하는 커다란 곰 모형에 탑승할 수 있는 놀이기구를 담당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