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저는 동생과 방을 같이 썼습니다. 아담한 이부자리에 함께 누우려면 상호 협의가 필요해서 서로의 발치에 머리를 뉘고 잠들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항상 나란한 자세로 자야 했는데 가끔 저는 “오늘은 마음대로 자는 날이야” 하고 우겼습니다. 그래봤자 자리가 넓지 않아서 온전히 대각선으로 눕는다든지 할 수는 없었지만요. 그래도 늘 하던 방법 대신 오늘만의 특별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 그 당시의 저에게는 나름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어릴 때 이야기를 꺼내자면 이불 텐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불 텐트 만들기는 의자나 책 등으로 세운 기둥 위에 이불을 얹어서 천장을 만들어 그 안에 눕는 놀이인데요. 조금만 움직여도 곧잘 무너지곤 하는 그 이불 텐트 안에 엎드려 책을 읽으면 아늑한 따스함과 함께 나만의 세상에 누운 듯한 기쁨을 느끼곤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유년 시절에 그 놀이가 남아 있단 사실도 무척 재미있었어요.
지금은 이불 텐트나 ‘마음대로 자는’ 규칙을 지어내지 않아도 되는 제 방을 갖고 있고, 그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쩐지 제 일상은 특별함 없이 지루한 날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린 왕자> 속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중절모로 밖에 볼 수 없는 어른들처럼 되어 버린 걸까요?
그래서 내일 저녁에는 돌발 이벤트를 하나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콘셉트는 ‘SF소설의 밤‘,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을 읽겠다는 뜻입니다. 바다 조명과 블루투스 스피커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테드 창의 SF소설집을 읽는 저만의 즐거운 행사를 꾸밀 예정입니다.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설레는 하루를 만드는 가성비 넘치는 방법… 일단 실험해보고 후기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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